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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20 04:18

의사로 살면서 경험한 썰 #26

글쓴이 : 의사로

<h3>의사로 살면서 경험한 썰 #26</h3>

?-------------------------------- 바쁜 한주를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부족한 제 글이지만 기다려주시는분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꼭 격일에 한번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섬이야기를 5편 이내에 끝낼 예정입니다. 이후의 의사로서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1. 과거의 섬 내가 있던 섬에 대한 묘사 진료중 시간이 비거나 진료시간이 끝나면 동네 마실을 돌곤했다. 진료실 앞으로는 해발 100m 남짓의 산이 있었고 산 앞으로는 여러 작물이 자라는 밭이 있었다. 11월에도 가끔 이곳에는 눈이 내렸는데 해풍의 영향인지 목포보다도 많은 눈이 내렸다. 한번씩 눈이 내리고 나면 산은 하얗게 바뀌었고 그 산은 멀리서 보는 맛이 있었다. 그러나 육지만큼 제설작업을 하지 않기에 가까이선 볼 수 없었다. 차디찬 눈이 신발에 묻어 결국 내 발에 스며들면 아름답던 설산마저 귀찮게 느껴졌다. 동네 마실중에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수 있는것들이 많았다. 당구장. 노래방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 한 30년동안은 그 자리에 꽂혀 녹이 슬어버린 이정표. 그 방향으로 가더라도 없을것이 분명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던 이정표는 오히려 다른 역할을 했다. 진료실이 어딘지 모르고 헤매던 관광객이 겨우 찾은 노래방 이정표를 통해 진료실 위치를 알려주기도 했다. 본래의 역할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예 기능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나는 배를 타고 들어 올 때마다 그 이정표를 지나쳤다. 이렇게 조용한 섬에도 노래방과 당구장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지금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한편의 아쉬움. 그렇게 사라져버린 섬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가끔 내게 고기를 구워주시던 할머니의 집에 가면 섬의 여러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현재는 1500여명 남짓 살고 있지만 많이 살때는 만명도 넘게 살았다고 한다. 요즘같이 냉동기술이 발달하지 않을때는 물고기를 잡고 가까운곳에서 판매하는 파시가 크게 열리기도 했는데 전국에서 배를 끌고 이곳으로 온 어부들은 섬에 머물며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적적하면 여자의 젖가슴을 주무르기도 했단다. 우스갯소리로 밤을 밝히던 홍등가 때문에 집어등을 켜지 않아도 물고기를 잡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한 흔적은 지금도 발견 할 수 있었는데 무너져버린 건물터 주위로 일본어 간판이 나뒹굴거나 한때 여관으로 쓰였던 건물들이 폐허로 바뀌어 있는것에서 할머니의 말이 좀 더 실감나기 시작했다. 몇 십 년전 과거는 단지 시간의 때만 묻지 않았다. 그동안 마주쳤을 많은 자연재해 그리고 파도. 지나간 시간보다 더욱 빠르게 과거의 명성은 사라졌고 그 자리는 폐허로 바뀌었다. 그즈음 만들어졌을 당구장과 노래방. 파시로 활황이었을 이곳에서 어쩌면 일상적인 유흥거리였을지 모른다. 신기하게도 몇십년이 지났지만 더 재밌는것들이 생겨나도 여전히 당구장과 노래방을 그리워한다는것은 아이러니 하긴 했다. 외부인으로서 섬의 멈추어버린 과거를 발견할때면 많은 생각에 빠지곤 했다. 과거의 명성을 잊지못하면 미래를 갉아먹는다. 2. 그녀의 부모님 그날은 ㅈㅅㅇ의 부모님을 뵙기로 한 날이었다. 아침의 기상만큼 10분이라도 더 미루고 싶은 순간이었지만 야속하게도 시계속 바늘은 똑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불속에서 밍기적 거려봤자 언젠가는 나가야함을 알고 있었다. 내가 최대한 미룰수 있는 한에서 그 스트레스의 순간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불속 내가 스트레스 받지 않는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내가 최대한 미룬 시간은 겨우 2시간이었다. 이제는 섬을 나가야했고 나가자마자 부모님을 만나야했다.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는게 싫다거나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거나 하는건 아니었지만 뭔가 어색한 자리가 내겐 부담이었다. 평소에 잘 신지 않던 구두와 정장을 챙겨나왔다. 그 옷은 ㅈㅅㅇ과의 첫만남때 입었던 옷이었다. 그것은 인턴기간 쓸 시간이 없어 모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치였다. 어쨌든 ㅈㅅㅇ과의 만남이 성공했으니 내게는 대단한 투자였다 하겠다. 부모님과의 만남은 3시간뒤였고 순천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겨우 1시간 정도의 말미가 있을것 같았다. 깃털만큼 가볍게 엑셀을 밟으며 순천에 도착했고 일단 호텔로 들어갔다. 거울을 보며 이래저래 넥타이를 매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매는 타이가 굉장히 어색했다. 매일 진료복만 입고 지내다보니 몸도 편한옷에 익숙해져버렸다. 그렇게 발을 옥죄는 구두와 목을 옥죄는 타이가 나를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여러번의 시도 끝에 내 목을 가장 자연스럽게 옥죄는 타이의 모양이 만들어졌다. 그 옥죔은 기도로 산소가 겨우 지나다닐정도의 답답함이었고 자연스레 내게 긴장감을 부여했다. 그 사이 쪄버린 몸뚱아리 덕분에 정장 외부로 몸의 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굉장히 매우 예측 불가능했던 상황이었고 겨우 자켓에 달린 단추가 그 모든 텐션을 잡아주고 있었다. 목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긴장으로 무장된 내 모습이 거울이 비쳤다. 긴장감이 이런 답답함을 주는것인지 아니면 부자연스러운 의상이 내게 답답함을 주는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답답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는건 꽤 큰 부담이었다. 긴장감과 씨름하는 사이 부모님과의 약속시간이 임박했다. 나는 부랴부랴 머리를 만질새도 없이 뛰쳐나갔다. 어느새보다도 빠르게 다릿짓을 하며 약속장소로 날달려갔다. 약속시간 10분전 나는 겨우 도착하여 ㅈㅅㅇ을 만났다. "오빠 멋있다""아휴 오랜만에 입었더니 어색해 죽겠어""오빠 이 옷 첫날 입었던 옷 맞지?""응 맞아 너 꼬시려고 샀던 옷이지 ㅋㅋㅋㅋ" 그녀와의 대화로 긴장이 풀렸고 식당안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로 먼저 예약된 자리에 착석했다.꽉 낀 내 옷은 양반다리로 할 때 최대의 텐션을 만들어냈고 웬만해서 움직이지 않는것이 좋았다. 이윽고 문풍지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5~10초면 나는 일어나서 부모님과 인사를 하게 될 것이었다.미친듯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무슨말을 해야할까.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까. 웃어야 할까. 고개는 숙여아할까. 찰나에 많은 고민들이 지나갔고 이내 문이 열렸다.피하고만 싶었던 순간이었다. 아버님을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내 바지 뒤쪽은 내가 일어나자마자 뿌지직하며 찢어졌다. 나를 사로잡던 텐션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내 마음속 긴장감이 사라진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걱정거리가 하나 생긴것이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은척 아버님과 악수를 했고 부모님은 나를 향해 웃으며 인사해주셨다. 그녀의 예쁜 미모는 의외로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웃는 모습이나 눈매가 아버지와 매우 비슷했다. 반면 그녀의 여성스러움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 같았다. 식사 내내 인자한 말투로 챙겨주시던 모습에서 느낄수 있었다. 찢어진 엉덩이 사이를 숨기기 위해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보여진다면 부모님을 만나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이 들키는것 같았다. 찢어져버린 내 정장바지는 며칠간의 내 긴장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이 물어보시는 신상에 대해 성실히 답변하고 비는 시간에는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밥 잘먹는 남자친구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가리는게 거의 없는 나로서 힘든 부분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쉽지만은 않았다. 겨우 내 앞에 놓여진 숙제를 처리하고 불판위 고기가 사라졌다. 이제는 디저트만 남았다.디저트가 들어오기전 한 몇분은 침묵의 시간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했고 배도 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이 만남이 단순한 저녁식사 자리가 아니라는것을... 어머니의 말씀이 들렸다. "응 그래서 ㅅㅇ이와는 언제 결혼할꺼야?" 순간적으로 2차적인 바지 터짐 사고가 일어날 뻔 했다. 너무 많이 먹었다. 단지 그 이유였다. 나는 섬에서 살이 많이 쪘었던것 같다. 언젠가 나올것이라곤 생각했지만 대답을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은 해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짧은 순간 여러 답들에 대해 빠르게 평가를 내렸다. 어떻게 말해도 정답이 될 최적의 답을 찾아야 했다. 의대 공부로 단련된 내 뇌는 그 짧은 순간 굉장한 힘을 발휘했고 내 나름의 최적의 답을 찾아냈다. "네 어머님. 부모님께서 저를 좋게만 봐주신다면 늦지 않게 결혼하고 싶습니다" 최적의 답이라 생각하고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좋아하셨다. 하지만 아버님은 그 자리를 떠날때까지 아무말 없으셨다.나는 아버님의 그러한 태도가 신경쓰였지만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지금부터는 터져버린 바지를 보이지 않는것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연신 웃으시던 어머님은 마지막 순간에도 내게 미소를 보이셨다. 아버님은 그렇지 않으셨다.아마도 내가 답변한 대답이 최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건방지게 결혼에 대해 성급히 말씀드렸던것은 아닌지 신경쓰였다. 그렇게 ㅈㅅㅇ 부모님과의 첫만남은 마무리 되었다. 수고했다며 나를 위로해주는 ㅈㅅㅇ.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이 신경쓰여 ㅈㅅㅇ에게 계속 넋두리를 늘어놨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실수한것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근처 카페로 이동했고 처음으로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해치워버린 과제 후 맞이하는 휴식의 달콤함. 그리고 사랑스러운 나의 여자친구.비로소 내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생겼고 입고 있던 옷도 불편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 옷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입었던 옷이었다. 내가 처음 입은지 10개월만에 다시 그녀를 위해 입고 왔다. 그 옷은 내가 극도로 긴장감을 발휘 해야 할 때만 사용되었다. 내 긴장감을 한껏 머금은 내 정장은 언제나 긴장 상태로 옷장에 걸려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잘 보일수만 있다면 어떤 긴장감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비록 엉덩이 부분이 찢어지긴 했지만 내겐 가장 멋진 옷이었다. 긴장감 때문인지 몇시간동안 그녀에게 눈이 가지 않았는데 그제서야 그녀에게 눈이 갔다.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원피스와 검은 스타킹에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진주빛 구두를 신고 있었다. 진주빛 구두. 내게 편안함을 주던 그것. 그것이 영구히 내집. 아니 우리집으로 들어와도 좋을것 같았다. 3. 결혼 결혼. 정말 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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