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요즘에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무서워요. 제 머리색이 특이하니까 누군가 와서 뭐라 할 수도 있잖아요. 요즘엔 밤에 겁이 나서 잠도 잘 안 와요. 그래도 권리를 찾기 위한 목소리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싸움을 멈출 순 없죠."
지난 17일 오후 퇴근 시간을 맞이한 지하철 4호선 혜화역. 목 뒤편을 다 덮을 정도로 긴 노란색 머리에 무릎 부위가 살짝 찢어진 청바지, 오른쪽 셋째·다섯째 손가락에 끼워진 알이 굵은 반지와 초록색 양말까지. 스물여섯 유진우씨는 그가 앉아있는 묵직한 느낌의 전동휠체어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군중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청년이다.
평소에도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그였지만 최근에는 튀는 외모가 걱정거리가 됐다. 길을 가다가도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고 해치려 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불안이 쌓여 집에 들어가면 잠자리에 누워도 잠에 쉽게 들지 못한다.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진우씨는 지난 15일 회사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낯선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진우씨를 한참이나 가만히 쳐다보던 그는 "야, 야, 야, 야 너 재밌냐?"라며 다가와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곤 "다리부터 부러트려 줄까. 팔부터 부러트려 줄까"라며 협박을 하고 진우씨가 휴대전화로 녹음하자 이를 강제로 빼앗으려 하기도 했다.
진우씨는 생면부지의 남성이 자신을 폭행하려 했던 이유에 대해 최근 자신이 장애인 단체의 출근길 이동권 시위에 동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동권 시위를 진행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사무실은 진우씨의 직장과 같은 건물에 있다. 그날 진우씨를 위협한 남성은 전장연 사무실에도 찾아와 '사무실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며 욕설을 쏟아냈다.
전장연은 지난해 연말부터 출근 시간대 지하철 역사에서 단체 시위를 계속해 오고 있다. 시위는 두 가지 형태로 진행하는데 하나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팻말을 들고 진행하는 선전전이고 또다른 하나는 출근 시간대 기습적으로 지하철에 단체로 승·하차 하는 방식으로 열차 운행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전장연이 출근길 시위에 나서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지난해 12월31일 국회를 통과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에는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국가 또는 지자체의 특별교통수단, 이동지원센터·광역이동지원센터 운영 비용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애초 개정안에서 국가나 지자체가 장애인의 시외 이동을 위한 특별교통수단에 대한 예산 지원을 '해야 한다'고 규정한 조항이 국회 교통위원회를 거치면서 '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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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가 두달 가까이 이어지자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시민들의 반응도 격해졌다. 이동권 시위를 응원하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상당수의 시민들은 '굳이 출근시간에 피해를 주면서 시위를 할 필요는 없지 않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불법 행위를 하지 않고도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오히려 시민들에게 반감을 사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시위에 대한 반감이 도를 넘어 '혐오'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지하철 내에서 시위 현장에서 참가한 장애인들에게 욕설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고, 시위 내용을 다루는 기사나 시위 모습을 라이브 방송하는 전장연 SNS 계정에는 댓글로 원색적인 욕설과 혐오 표현이 줄을 이었다. 시위에 반대하는 이들로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공격으로 전장연의 온라인 홈페이지가 먹통이 되기도 했다.
이런 반응들에 대해 시위에 직접 참여했던 진우씨는 오히려 이렇게라도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는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이런 갈등이라도 생겨야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라고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왜 국회나 청와대 앞에 가서 시위를 하지 굳이 지하철에서 하나'는 시민들의 반응에 진우씨를 포함해 다수의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은 같은 답을 한다. "다 해봤다"는 것이다. 국회도 가고, 청와대도 가고 기재부 앞에 가서도 이야기를 해봐도 먹히지 않으니 이야기가 들릴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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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7일 퇴근길에 오른 진우씨는 집으로 향하는 4호선 상행선 열차를 그냥 보내야 했다. 장애인 전용 구역이 있는 승강장 앞에서 기다렸지만 퇴근 시간대 만원 지하철을 타는 승객들은 진우씨를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 양보의 시선을 보내지는 않았다. 두 번 열차를 보내고 세 번째 열차에 겨우 몸을 실었다.
집 근처 역에 도착해 하차할 때도 진우씨를 답답하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열차에 내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에 오르려 하자 먼저 타고 있던 4명의 여성 중 한명이 공간이 좁다며 "아휴 좀 다음에 타지"라는 말을 면전에 던졌다. 진우씨의 휠체어 때문에 엘리베이터 벽으로 몰린 한 여성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진우씨는 웃으며 "한번 더 뭐라 하시면 화를 내려고 했는데 참았어요. 그래도 기회는 드려야죠"라고 말했다.
박동해 기자(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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