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은 한일병합 이후 기독교(개신교+천주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우선 손을 본 곳이 불교와 유교였다.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를 당하는 것을 본 유림세력들이 의병운동에 투신하는 걸을 본 일제는 조선에서 가장 성가신 세력으로 유림들을 상정했으며, 1907년 대동학회란 친일 유림단체를 설림하여 유림들을 회유하는 한편, 각 지방의 향교에서 일제에 저항하는 유림들을 내쫓고, 친일 유림들을 등용하는 방식으로 유교 세력을 지배해가기 시작했다.
1911년 6월 3일 사찰령을 공포하고 불교의 작은 것 하나까지 총독부의 관리를 받게 하였다. 사찰의 병합, 유지, 폐쇄, 개명 등 모든 활동까지 신고를 해야 했으며, 집회와 종교 의례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유림 세력에 했던 것처럼 사찰의 우두머리인 주지승들마저 일본 승려들로 강제로 교체하고, 승려들을 총독부가 직접 관리, 처벌하게 만들었으며, 사찰의 재산권도 박탈해버렸다.
사실 이것은 1906년에 공포한 '종교의 선언에 대한 규칙'의 후속조치였는데, 일본은 이미 이 때부터 조선 불교를 일본 불교에 종속시키고자 하였다.
일련의 정책들을 통해 일제는 조선의 불교 자체를 형태만 남기고 싹 다 말살하려고 한 것이다.
사찰령이 내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11년 6월 15일 경학원 규정을 공표했다. 경학원은 기존의 성균관을 대체하는 유교 교육기관이었지만, 일제는 경학원의 원장을 조선총독이 임명하였고, 기타 고위층도 친일파들로 체워넣었고, 유지비 역시 총독부 관할로 넣음으로써 여실히 총독부의 선전기관으로 전락시켰다.
그 다음으로 손을 본 곳이 천도교, 대종교 등 민족종교였다.
1915년 8월16일 총독부령 제83호로 이른바 '포교규칙'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신도, 유교, 불교, 기독교(천주교, 개신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유사종교단체로 규정하였으며 철저히 탄압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천도교와 대종교는 지하활동 밖에 할 수가 없었고, 대종교는 아예 본산을 만주로 이동시키고, 무장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신흥무관학교와 청산리대첩의 주역인 북로군정서가 대종교 소속.
이제 남은 종교는 기독교, 개신교와 천주교
우선 천주교는 선교권의 보장을 위해 초기부터 조직적으로 친일 활동을 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말기 신사참배에 있어서는 교황청이 직접 신사참배를 허용하는 작태까지 보이며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인 안명근 선생이 데라우치 암살 계획을 고해성사하자 고해성사를 들은 신부는 서울대교구의 뮈텔 주교에게 이를 전하였고, 뮈텔 주교는 이를 조선총독부에 보고한 사건이 일어났다. 일명 안명근 사건, 안악사건, 그리고 105인 사건으로 알려진 그 사건이다.
이 뮈텔 주교는 안중군의 이토히로부미 저격 의거 때에도 '안중근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를 위한 성사를 해줄 수 없다.'며 모든 성직자에게 안중근 의사를 위한 면회와 예식을 금지시켰다.
이것이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천주교 최고 지도자의 모습이었고, 이처럼 천주교는 여러 종교 단체들 중 가장 친일에 앞장서는 행보를 취해왔다.
이제 남은 것은 논란의 개신교.
개신교는 일본의 우방이었던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일제가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일제는 개신교를 직접 핍박하지는 못하고 정치와 엮어서 손을 보려고 시도를 했다.
이것이 위에서 서술한 안악사건, 105인 사건으로 데라우치 암살미수사건을 일제가 부풀려서 105인 사건으로까지 발전시키며 이와 관련된 개신교계 인사들을 투옥시켰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사들은 무죄방면되었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감시를 하긴 하였지만 상술한 종교들처럼 강압적인 탄압은 일제 초기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1919년에 31운동을 일어났다.
여담으로 31운동 바로 전에 유림대표 137명이 파리강화회담에 한국독립청원서를 보낸 일 등 스러져가는 가운데에서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역사는 이긴 자의 편이라고,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버린 유림들의 행적은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여튼 31운동이 일어나고, 이 때 기독교계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두 세력이 중심이 된 까닭은 당시에 지속적으로 집회를 가지고 정보를 공유하고 대대적인 운동 준비를 할 수 있었던 집단이 교회와 학교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신교 단체에서 준비되었던 독립운동의 결과물은 오롯이 개신교 만의 것일까?
당시 개신교계 미션스쿨들이 서양학문을 배우는 교육의 장으로 여겨졌고, 이를 위해 신앙심이 없던 학생들도 배움을 위해 미션스쿨에 입학하는 자들이 많았다.
개신교계에서 그토록 홍보하는 유관순 열사도 그다지 신앙심이 깊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식사 기도 중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신앙간증을 하지 않고 '명태의 이름으로 빕니다.'라고 장난을 칠 정도였으니 말이다.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이건 엄연한 신성모독이다. 당시 유관순 열사의 나이는 18살이었다고 한다. 유년기였으면 몰라도 18살 먹고 제대로 된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 이와 같은 장난을 할 리는 없지 않은가?
이것을 현재에 적용해보면 연세대학교에 다닌다고 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연세대학교에서는 아직도 전교생을 대상으로 채플을 한다. 이 채플은 졸업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미션스쿨이기 때문에 대놓고 기독교 예배를 강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연세대학교 출신은 모두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31운동 당시에도 큰 차이는 없어보인다. 물론 시대상 때문에 지금보다는 개신교인들의 입학비율이 높았을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이신 유중권 열사 또한 교회와 학교를 세웠지만, 정작 본인은 제사를 지내는 유림이었다. 개신교 관련 인사가 다 개신교인이 아니라는 또 다른 방증인 셈.
즉, 개신교 측에서는 개신교인들이 주도한 만세운동이라고 자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기독교 단체의 운동일 뿐, 전적으로 기독교인의 운동이라고 보기엔 부족하다.
개신교계의 독립운동 참여 비율(16%)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조건 때문이었고, 종교적인 신념은 그다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독립운동이 개신교 교단의 뜻이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호도와의 글에서도 썼지만,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계는 단순히 기독교인 개개인들이었고, 멀쩡한 상태로 유지되던 교단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나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그런 이야기는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31운동 이후로 개신교계의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일제 말기로 가면 갈수록 종교계 중에 가장 친일에 앞장섰던 집단이 개신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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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일제 말기에 들어서면서 적극적으로 부일행위를 했다. 성전이라는 이름의 악의 전쟁에 협조했다. 신의주에서 모인 장로교 총회는 교회조직을 전쟁보조 기구로 개편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회록에 따르면 장로교회는 1937년부터 3년 동안 국방헌금 158만원, 휼병금 17만2000원을 모아 바쳤고, 무운장구기도회 8953회, 시국강연회 1355회, 전승축하회 604회, 위문회 181회를 치렀다.
1942년에는 ‘조선장로호’라는 이름이 붙은 해군함상전투기 1기와 기관총 7정 구입비 15만317원 50전을 바치고, 미군과 싸워 이겨달라는 신도의식을 거행했다. 1942년에 열린 제42회 총회의 보고를 보면 장로교단은 교회당 종 1540개와 유기 2165점과 12만여원을 모으고 마련하여 일제에 바쳤다.
감리교회는 1944년에 교단 상임위원회의 결의로 ‘감리교단호’라는 이름을 붙인 애국기 세 대를 살 수 있는 돈 21만원을 헌납했다. 모금은 ‘성도의 헌금 전액과 교단 소속 교회 병합에 의한 폐지 교회의 부동산을 처분하여 충당하는’ 방법에 따랐다. ‘교회병합 실시 명세표’를 만들어 전국 교회에 보냈다.
일제말기의 한국교회 신자들은 대부분 ‘기독교도연맹’에 가입했다. 교회는 연맹회비를 한 사람당 20원씩 받았다. 교회는 이렇게 받은 회비, 헌금 등을 가지고 일제의 병기 구입에 사용하라고 헌납했다. 병기 헌납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했다.
한국교회는 앞 다투어 전승축하기도회를 가졌고, 위문품을 보냈다. 기독교 인사들은 집회에 연사로 나섰다. 김활란, 백낙준 등은 이곳저곳에 강연하러 다니면서 조선의 젊은 남녀들에게 일제의 전선에 나가 그 애국적 정열을 나라를 위해 바치라고 외쳤다.
http://www.ck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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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일부만 퍼왔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더 많은 친일부역행위들이 열거되어 있다.
물론 신사참배 거부운동도 있었다. 하지만 이 때 체포된 개신교인은 2000여명, 처형되거나 옥사한 사람은 50여명, 폐쇄된 교회는 200여채 밖에 안 될 정도로 개신교 전체 규모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치이다.
그리고 이들 신사참배를 거부한 개신교인들은 따로 모여서 예수교 장로회 고신 교단을 만든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고신측은 소수 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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