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 피고인 A씨(20)의 살인 고의를 판단한 주된 배경은 법의학 감정 결과였다. 검찰은 국내 1세대 부검의이자 법의학계 권위자인 이정빈 가천대 의대 석좌교수의 소견을 참고해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A씨는 본인이 피해자를 밀어 떨어뜨리지 않았다는 주장을 이어 왔지만 법의학의 결론은 달랐다.
15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구미옥)는 이 교수의 참여하에 실시된 사건현장 조사와 소견 등을 종합해 애초 준강간치사로 송치된 A씨의 죄명을 강간 등 살인으로 변경했다. 창틀에 걸쳤던 피해자의 부위, 피해자의 혈중알콜농도, 신체에 페인트 물질이 남았는지 여부, A씨가 녹음해둔 사건 당시의 음성 파일 등을 종합 고려한 결과였다. 이 교수는 “가능성은 피해자가 스스로 떨어졌느냐 남이 밀어서 떨어졌느냐의 두 가지였다”며 “스스로 떨어진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소견을 밝혔다”고 말했다.
검찰과 이 교수는 사고 현장 창문 높이와 벽의 두께부터 주목했다. 추락 사건이 발생한 곳은 복도 창문이었는데, 이 창문은 지상으로부터의 높이가 106㎝였고 창문이 있는 건물 벽면의 두께는 24㎝였다. 130㎝가량의 거리를 움직여야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구조였는데, 사고 수 시간 뒤 측정된 피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9%였다. 이 교수는 “추락 당시에는 혈중알콜농도가 더 높았을 것”이라며 “스스로 벽을 넘기는 어렵다고 봤다”고 했다.
또 다른 근거는 피해자의 ‘깨끗한 손’에 있었다. 이 교수는 피해자가 스스로 밖으로 향했다면 창문 바깥쪽에 손을 대 자신의 몸을 끌어 올린 흔적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손에서는 현장 벽면의 페인트 물질이 발견되지 않았고, 벽면에서도 피해자가 손으로 짚었음을 뒷받침할 산화 반응이 감지되지 않았다. 녹음 파일 속에선 피해자가 아무런 의식이 없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는 피해자의 추락엔 A씨로부터의 유형력 행사가 일정 부분 동반됐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A씨는 피해자의 추락 직후 40~50초간 곁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교수에게 ‘A씨가 현장을 바로 떠나지 않고 치료를 도왔다면 결과가 다르지 않았겠느냐’고도 질문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추락 직후 이미 뇌를 비롯한 장기들에 다발성 손상이 진행됐다는 소견을 전했다. 검찰은 결국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아닌 ‘작위’에 의한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구호 여부와 무관하게 피해자를 추락시킨 행위 자체가 사망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다음달 1일 시작되는 재판에서도 ‘과실이냐, 고의냐’의 문제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간 등 살인이 인정되면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밖에 없다. 이 교수는 미필적 고의 판단에 대해 “나는 법을 다루진 않고, 소견을 낼 뿐”이라고 했다.
이경원 기자(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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