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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요코하마 플뤼겔스: 클럽은 사라졌지만, 영혼은 사라지지 않았다
 작성자 : GBByY917
Date : 2020-03-19 03:42  |  Hit : 39  

Yokohama_Flügels_logo.svg.png [칼럼] 요코하마 플뤼겔스: 클럽은 사라졌지만, 영혼은 사라지지 않았다


요코하마 플뤼겔스는 1964년 창단, 1993년부터 1998년까지 J리그에 참가한 후 요코하마 마리노스에 합병된 팀이다. 일본 축구계가 요코하마 플뤼겔스를 더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해체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필자와 함께 플뤼겔스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간단하게 알아보는 플뤼겔스의 역사


1964년 요코하마 나카구 스포츠 소년단이란 스포츠 클럽이 플뤼겔스의 전신이다. 이름만 소년단이었을 뿐 유소년부터 사회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공존하던 종합 스포츠단이었다. 이 중 축구단은 1975년 분리돼 요코하마 사커 클럽으로 변경했다. 1979년, 전일본공수(ANA)는 실업팀을 보유할 의향이 있었고 요코하마 사커 클럽에 자금을 지원해주며 지분을 만들어갔고 이후 완전히 전일본공수의 팀으로 바꾸며 전일본공수 축구단을 만들었다. 당시 ANA의 주력기였던 록히드-L1011의 애칭 트라이스타의 이름을 따 '요코하마 트라이스타 사커 클럽' 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간토 리그 우승, JSL 2부 준우승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한 트라이스타는 전일공 요코하마 사커 클럽->전일공 사커 클럽으로 개칭, 1991년 J리그 가맹에 참가하며 프로화를 했고 ANA와 사토 공업이 공동으로 구단 운영에 참가하며 요코하마 플뤼겔스로 1993년 J리그에 참가한다. (Flügels에서 Flügel은 독일어로 날개를 뜻한다.) 플뤼겔스는 이후 1993년 일왕배, 1995년 아시안컵 위너스컵, 슈퍼컵 우승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한다. 1998년, 바르샤 레전드 카를로스 레샤크를 감독으로 선임해 바르셀로나식 티키타카를 정착시켜줄 적임자란 기대를 받았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이며 경질됐고 후임 게르트 엥겔스도 부진을 타개하진 못했다. 10월 24일, 교토 퍼플 상가 전에서 3-2 패배를 기록했을 때도 서포터는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위해 박수를 치며 다음 경기에선 이길 것이란 기대를 했다. 그런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합병 소멸 소식, 하지만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483262_388637274523741_934164919_n.jpg [칼럼] 요코하마 플뤼겔스: 클럽은 사라졌지만, 영혼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문에 쓰여진 '플뤼겔스 소멸., 마리노스에 흡수.' 란 제목을 본 플뤼겔스 팬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페이스북]


1998년 10월 29일, 플뤼겔스 팬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신문에서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요코하마 플뤼겔스의 합병이 발표된 것. 플뤼겔스 팬들은 이게 무슨 개소리냐며 이 사항은 구단 내부에서도 이미 논의됐고 양 구단끼리 합의까지 했다고 한 것이 알려지자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다. 이런 충격적인 합병을 하게 된 배경에는 플뤼겔스의 모기업이던 사토 공업이 경영난을 이유로 스폰서에서 빠졌으며, ANA도 아시아발 금융위기로 인해 항공 이용객이 감소하며 적자를 기록하는 등 ANA 혼자서 구단을 운영하기엔 너무나도 벅찼다. 이 때문에 플뤼겔스도 재정난을 겪고 있던 상태였다. 이 때문에 플뤼겔스 보드진은 요코하마 마리노스의 모기업 닛산자동차와 합병을 협의했고, 주도권을 마리노스가 가져가며 플뤼겔스를 흡수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합병 발표가 난 당일, J리그 이사회는 이를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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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뤼겔스를 살려달라!' 플뤼겔스 선수들은 절박했다. [shooty]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팬들은 10월 31일 세레소 오사카와 경기가 종료된 후, 단체로 경기장 앞 광장에서 농성을 하며 프런트와 대화를 요구했다. 선수단도 이대로 클럽이 해체되는 꼴을 볼 수 없다며 가만히 있지 않고 서포터와 함께 거리에 나가 합병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고 62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낸다. 플뤼겔스 서포터는 합병에 반대한단 의미로 푸른 리본을 달며 그들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unnamed.jpg [칼럼] 요코하마 플뤼겔스: 클럽은 사라졌지만, 영혼은 사라지지 않았다

홈 최종전, 그들은 마지막까지 찾아온 팬들을 위해 포기하지 않았다. [geocities]


11월 7일 홈 최종전에서 경기 후 게르트 엥겔스 감독이 "누구라도 좋다! 우리 플뤼겔스를 살려달라!"며 클럽의 구제를 호소하는 요청을 직접 일본어로 말했다. 또한 플뤼겔스의 팬으로 알려진 일본의 TV 진행자 존 카비라의 동생 지에이 카비라도 본인의 출연 프로그램에서 플뤼겔스를 살려달란 요청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등 플뤼겔스 합병 문제는 일본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후에도 서포터들은 집회를 열며 합병 반대를 요구했지만 요코하마 플뤼겔스의 모기업 전일본공수 스포츠는 합병 문제는 모기업의 결정 사항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그리고 12월 2일, 플뤼겔스와 마리노스의 합병 조인식이 열렸다. 플뤼겔스 서포터는 합병에 반대하며 조인식 행사장 진입을 시도하며 팀의 합병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합병 문서는 서명되며 합병은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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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발표 전후 플뤼겔스 성적. [위키피디아]


합병 발표 후에도, 합병 조인식 후에도 플뤼겔스의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당시 일왕배는 12월에 중립구장인 국립 경기장에서 한꺼번에 경기를 치르는 방식이었는데, 게르트 엥겔스 감독은 일왕배에 후보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고려했다. 하지만 벤치 멤버 사쿠라이 다카시가 "강한 플뤼겔스를 보여줘야 한다"며 극구 반대, 엥겔스 감독은 이를 포기하게 된다. 이 발언은 플뤼겔스 선수단에 '매 경기가 마지막 경기'라는 각오를 다지며 이후 잔여 시즌 공식전과 일왕배 시합을 포함한 남은 9경기에서 전승을 기록하는 쾌거를 보였다. 


플뤼겔스 최후의 킥오프입니다.


라인업.png [칼럼] 요코하마 플뤼겔스: 클럽은 사라졌지만, 영혼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 78회 일왕배 결승전 플뤼겔스 Vs 시미즈 라인업. [위키피디아]


1999년 1월 1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제78회 일왕배 결승전이 치뤄졌다. 시미즈 S펄스를 상대로 한 이 경기는 사실상 플뤼겔스란 이름을 달고 뛰는 마지막 경기였다. 일왕배 결승이 플뤼겔스 선수들에겐 고별전이었던 셈.


플뤼겔스 최후의 킥오프입니다. - NHK 캐스터


그렇게 플뤼겔스 최후의 경기가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해설은 플뤼겔스 초대 감독인 가모 슈(도쿄 대첩 당시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반 13분 시미즈의 사와노보리 마사아키가 헤더로 선제골을 넣으며 끌려가던 플뤼겔스는 44분, 혼전 상황 속 중앙에서 롱패스를 받은 요시키요가 골을 넣는다. 동점골로 자신감을 얻은 플뤼겔스, 후반에는 공격적으로 시미즈를 압박해 갔다. 세이고의 연이은 선방으로 추가 실점을 막아내는 플뤼겔스는 73분, 롱패스 후 짧은 패스를 받은 요시다 타카유키가 골을 넣으며 2-1 역전에 성공한다. 엥겔스 감독은 침착하라며 현재 점수차를 지켜내라고 지시했고 그대로 경기는 종료되며 일왕배 우승팀은 요코하마 플뤼겔스가 되었다. 마지막을 우승으로 마무리한 플뤼겔스. 이 날만은 플뤼겔스 선수단, 팬들 모두 잠시라도 해체란 슬픔을 잊었던 경기였다. 플뤼겔스의 일왕배 우승은 합병 발표에도 포기하지 않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들이 만들어나간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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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경기까지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토메]

https://www.youtube.com/watch?v=lHmU0eBK81k&feature=emb_title

플뤼겔스의 일왕배 우승 셀레브레이션 영상.


플뤼겔스의 영혼은 아직도 살아 숨쉰다.


일왕배 결승전 이후, 2월 1일 예정대로 플뤼겔스는 마리노스에 합병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요코하마 마리노스도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이름을 변경했다. 여기서 F가 플뤼겔스의 첫 글자를 딴 것. 플뤼겔스가 써내려갔던 우승기록도 사라졌다. 그러나 플뤼겔스의 팬들은 도저히 이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응원하던 팀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F'라는 글자 하나에 만족할 수 없었던 플뤼겔스 팬들은 1999년 소시오제도(시민주주 50% 이상 보유, FC 바르셀로나가 이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를 통해 플뤼겔스의 전통을 잇는 요코하마 FC를 창단한다.



요코하마 플뤼겔스 팬들이 창단한 요코하마 FC의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작성하겠습니다.


이 기사는 제 티스토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s://dduddazeon.tistory.com/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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